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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은 지리산 둘레를 잇는 길에서 만나는, 자연과 마을, 역사와 문화의 의미를 다시 찾아내 잇고 보듬는 길입니다. 한 때는 좌, 우로 나뉘어 낮과 밤을 달리 살아야 했던 아픈 상처도 지리산 길은 품고 있습니다. 5개의 시군을 이어주는 모든 길이 열렸고, 다양한 코스 중 오늘은 송정-오미 코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지리산 둘레길 송정-송정계곡-원송계곡-노인요양원-오미 코스 소개

목차

    지리산 둘레길

     

    2000년 시작된 ‘지리산마음으로 세상을 배우자’ 지리산공부모임과 실천방향을 그림으로 담은 생명평화 무늬. 지리산 둘레를 걷다 보면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이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단순 소박함을 깨우치게 됩니다. 그대 없이 내가 있을 수 없다는 지리산의 가르침은 시대를 넘는 진리입니다.

     

    송정-오미 코스

    지리산 둘레길 송정-송정계곡-원송계곡-노인요양원-오미 코스 소개

    구간별 경유지

     

    송정 – 송정계곡(1.8km) – 원송계곡(1.4km) – 노인요양원(2.7km) – 오미(4.5km)

     

    송정-오미구간은 구례군 토지면 전경과 섬진강을 보면서 걷는 길로 농로, 임도, 숲길 등 다채로운 길들로 이어진 10.4km의 둘레길이다. 숲의 모습 또한 다채롭다. 조림현상과 산불로 깊게 데이고 다친 지리산의 상처를 만난다. 아름다운 길에서 만나는 상처는 더욱 아프고 자연과 인간의 상생을 생각하게 한다.
    남한의 3대 길지 중 한곳으로 알려진 운조루를 향해 가는 길은 아늑하고 정겹다. 섬진강 너머 오미리를 향해 엎드려 절하는 오봉산이 만드는 풍광도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송정마을에서 출발해 약 1km의 오르막길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완만하고 숲길이 많은 편이라 걷기에 좋다. 오미마을은 조선시대 양반가를 엿볼 수 있는 운조루로 유명하다. 남한의 3대 길지로 꼽히는 운조루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이 새겨진 큰 쌀독이 있다. ‘누구든 이 쌀독을 열 수 있다.’는 뜻으로, 흉년이 들었을 때 굶주린 사람들에게 이 쌀독을 열어 구제했다는 말이 전해져 온다.

     

    주요 경유지

    1. 의승재, 석주곡수


    송정마을에서 숲길을 걸어 다고 험한 비탈을 올라서면 의승재에 다다른다. 의승재에서 석주곡수까지는 아름드리 편백숲이 순례자의 마음을 차분히 만들어준다.석주곡수는 정유재란 때 구례선비 왕득인 등 수많은 구례 의병들과 화엄사의 승병들이 왜군에 맞서 백병전을 벌이다 옥쇄한 피의 전장이다. 순절한 의승병들이 흘린 피가 흘렀던 계곡물은 혈천(血川) 또는 피내라 불리며 석주관 칠의사묘 앞을 지나 섬진강으로 합류한다.

     

    2. 토지면 오봉전망대


    지리산둘레길은 원송마을과 숲길을 지나 토지면 파도리에 다다른다. 구례노인요양원을 돌아 가파른 임도를 올라서면 왕시루봉 끝자락에 자리한 파고라 쉼터에 도착하게 된다. 오봉과 섬진강의 여유로움과 넑게 펼쳐진 구만들의 넉넉함이 어우러진 풍광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곳이다.오봉과 섬진강을 바라 보노라면, 선녀가 하늘로 오르다 금가락지를 떨어뜨렸다는 금환락지(金環落地)의 명당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3. 문수골, 문수제


    지리산둘레길은 임도를 따라 새로 조성한 솔까끔마을을 지나면서, 노고단에서 흘러 내려온 문수골 맑은 물이 넓은 호수를 이룬 문수제를 만나게 된다.문수골의 이름은 문수암 혹은 문수보살과 연관되어 있는데, 문수보살은 불교에서 복덕(福德)과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현재, 문수암은 노고단 아래 문수대로 유추하고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문수골은 1948년 10월 여순항쟁의 14연대 반란군들이 섬진강을 건너 지리산으로 들어와 주둔한 곳이다. 이때부터 1955년 5월까지 7여년 동안 총 맞아 죽고, 얼어 죽고, 병들어 죽고, 굶어 죽어야 하는 혹독한 운명의 지리산 빨치산의 역사적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이다.

     

     

    4. 내죽마을, 하죽마을


    지리산둘레길은 문수제를 내려서 내죽, 하죽마을을 지나게 된다. 문수제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 일대는 대나무가 울창하여 대밭골이라고 불렸다. 대밭골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 윗대내, 안쪽에 있는 마을이 안대내,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 바깥대내로 불렸다.마을의 유래에 관한 전설이 내려오는데, 옛날 문수골의 물을 대기 위하여 보를 만들려 하였으나 보의 입구가 암석으로 이루어져 보구(洑口)를 뚫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룻밤 사이에 죽순이 바위틈을 비집고 솟아 올라와 보구를 뚫게 되어 대내(竹川)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내죽마을에서 오미마을로 가는 길에는 마을 빨래터가 곳곳에 눈에 띈다.

     

    5. 오미마을, 운조루


    오미마을은 선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장소라는 금환락지와 금거북이가 진흙 속에 묻혀 있다는 금귀몰니, 금 은 진주 산호 호박 등의 다섯 가지 보석이 쌓여 있다는 오보교취의 명당으로 잘 알려진 마을이다. 풍수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땅으로 마을 뒤로는 노고단 형제봉능선(월령봉능선)이 뻗어 내려오고 마을 앞으로는 너른 들판을 가로질러 섬진강이 흐른다.운조루란 이름은 도연명의 귀거래사라는 칠언율시에서 머리글자만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영조 때 유이주(柳爾胄)가 낙안군수로 있을 때 건축했다. 조선 후기 귀족 주택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는 남아 있는 몇 안되는 건축물이다. 운조루는 일종의 택호에 해당하는데, 원래는 큰사랑채 이름이다. ‘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란 뜻이다.또한, 운조루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쌀독을 두어 주위의 배고픈 사람이 쌀을 가져갈 수 있게 하는 나눔의 정신을 실천해 귀감이 되고 있다. 150여점의 유물이 보관 전시되어 있는 운조루유물전시관은 운조루의 역사와 삶의 모습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